사자는 사자로 태어난 까닭에 얼룩말 등 먹잇감의 뒷발에 차여 아예 죽을 수 있는데도 사자로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었고, 독수리도 독수리로 태어난 까닭에 심지어 썩은 동물의 사체를 먹으면서 독수리로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호랑이나 하이에나, 혹은, 토끼 등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였고.
언제인가 TV에서 방영되던 동물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가 다시 한 번 생각되더군요.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또, 내가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있구나.’
그리고는 생각해보니 성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남자는 남자로 태어났으니 남자로서 살아가야하며, 여자 역시 여자로 태어났으니 여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한다는 것이었죠.
좋거나 싫거나 상관없이.
‘남자로서 살아야 남자다울 수 있고, 여자로서 살아야 여자다울 수 있구나’
그런 뒤에 남자로서 살아가려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모든 성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하며, 여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도 여자만이 할 수 있는 모든 성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찾아지는 대로 한동안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자기 역할을 하나하나 찾았습니다.
남자, 아버지, 형, 오빠, 남편 등등.
막연하게 고작 몇 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성적인 역할은 왜 그다지도 많던지.
‘이 모든 역할을 다 해야 남자로서 살 수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그중에는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역할도 적지 않게 있더군요.
‘나는 친동생이 없으니 친형이나 친오빠라는 역할은 할 수 없잖아.’
또,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남편이라는 역할을 할 수 없는 등, 나의 선택에 따라서 해야 하는 역할이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었죠.
‘이래서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나?’
뿐만 아니라, 내가 해야 될 성적인 역할 중에는 누구인가는 매우 오랫동안 계속해서 해야 하는 반면, 나는 잠깐만 하면 되는 역할도 있었는데, 이런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또 알게 된 사실이, 같은 남자여도 각기 해야 하는 성적인 역할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와는 달리, 친동생이 있는 남자들은 친형이나 친오빠라는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